6월 1일에 있었던 짐본즈(커크본즈) 피오케 행사에 가져갔던 배포본 "Secret" 을 공개합니다.
원래는 살을 좀 불릴 이야기들이 몇 개 있었는데ㅠㅠ 개인 사정으로 인해 도저히 새로 뭘 쓸 시간이 되질 않아서 구간만 가지고 갈까 하다가 그래도, 그래도 배포본이라도 뭐라도 정리해서 내자 싶어서 급하게 정리하게 되었어요. 소재를 주셨던 ㅊ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또 배포본으로 엮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홍보에는 금수라고 되어 있었죠. 죄송합니다. 일정에 도저히 맞출 수가 없기도 했거니와 원래부터 저렇게 딱 이야기를 끝내 놓으니 중간에 뭘 넣으면 도저히 배포본이 될 수가 없겠더라고요.. 눈물 줄줄...ㅠㅠ 그래서 이야기의 살을 더 붙이진 못하고 약간 이상한 부분만 수정해서 가져갔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부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배포본 가져가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X)
밤공기는 적당히 서늘했다. 커크는 휘파람을 불며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만날 수 있으려나. 뺨을 손바닥으로 문질러대며 신호를 기다렸다. 그 때, 뒷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웅웅 울려댔다. 휴대폰을 꺼내는 커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발신자의 이름을 알려주는 화면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그는 빨간 버튼을 밀었다. 순식간에 폰의 울림이 멎었다. 그러나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자마자 다시 휴대폰이 길게 울었다. 짜증스러움 가득한 동작으로 커크는 휴대폰에서 배터리를 빼냈다. 까맣게 변한 휴대폰 액정 위로 만족스러운 커크의 미소가 비쳤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특유의 가게 향이 확 끼쳤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 그는 지나가는 종업원에게 아는 체를 하며 바를 죽 둘러봤다. Bingo! 커크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내며 바에 다가갔다.
“이거, 너무 오랜만이지 않아요?”
“…아.”
거의 엎드리다시피 기대어 잔을 만지작대던 남자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시야가 또렷하지 않은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가늘게 했다. 커크는 남자의 옆에 앉으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자신을 살피던 남자는 곧 손가락을 튕기며 “미스터 커크.” 하고 말했다.
“에이, 짐이라고 부르래도요.”
“그건…뭔가 낯간지러워서요.”
“그래요? 나는 그렇지 않은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안한데, 레너드가. 커크는 싱긋 웃고는 자주 마시던 술을 주문했다. 남자는 테이블을 짚으며 둥글어진 등을 곧게 펴려고 노력했다. 조금 휘청거려 커크가 잡아줘야 했지만.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에게 웃어주며 커크는 엉망으로 구겨진 셔츠를 정리해주었다. 술 냄새가 강하긴 했지만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약품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남자를 알게 된 것은 약 석 달 전이었다. 여느 때처럼 여자들에게 작업을 걸고, 바텐더와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던 커크는 바의 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던 그를 발견했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각이 진 가방은 커크가 다니는 이 펍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잔 모서리를 더듬으며 시선을 내리깐 모습은 마음에 들었다.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단숨에 비우고 새로 술을 주문한 커크는 그의 옆에 앉았다. 남자는 옆에 누가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커크는 피식 웃고는 남자의 시선이 떨어진 곳에서 손가락을 톡톡 움직였다. 놀람, 의아함, 짜증, 경계 등등의 부정적인 것들이 뭉쳐진 눈동자가 자신을 향했다. 그러나 그 경계의 벽은 단단하지 못했다. 조금만 두드리면 충분히 허물어질 것 같았다. 바텐더가 가져다 준 술잔을 들어 보이며 커크는 매력적인 웃음을 지었다.
「눈빛으로 테이블 구멍 내면 얼마를 변상해야 하는지 알아요?」
「…뭐요?」
「와우. 이번엔 나를 구멍 내시려고?」
별 미친놈을 다 봤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폐 몇 장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가방을 집으려는 그의 손목을 잽싸게 커크가 붙잡았다.
「하하, 미안해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도와준 건 알아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놔 주시죠.」
「에이, 정말이라니까? 계속 그렇게 우수에 찬 얼굴로 있었다면 이 펍의 아가씨들이 당신을 위로해주려고 안달이 났을걸. 그러니 나한테 고마워해야해요.」
깜찍하게 윙크를 하며 커크가 남자의 손을 세게 잡아 당겼다. 그 기세에 자리에 도로 앉은 남자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난 제임스 커크예요. 그 쪽은? …맥코이요. 레너드 맥코이. 그것이 남자와 커크의 첫 만남이었다.
“워워, 더 주문하려고요? 내가 오기 전까지 이미 많이 마신 것 같은데요?”
“오늘은…오늘은 괜찮아요. 오늘 같은 날 마시지 않는다면…언제 마시겠어요.”
“어, 무슨 일 있어요?”
맥코이는 헛웃음을 지으며 바텐더에게 같은 술을 주문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커크의 얼굴에 걱정스러움이 떠올랐다. 바텐더가 맥코이의 앞에 술잔을 내려놨다. 그 잔을 집어 들며 입 안으로 쏟아 붓는 그를 바라보던 커크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설마.”
“하하, 기억하고 있었군요. 네.”
이혼했어요. 오늘. 완벽하게. 맥코이는 술잔을 만지작대던 손을 휘휘 저으며 웃었다. 그 웃음은 어딘가 텅 비어있었다. 허허로운 웃음은 긴 한숨으로 마무리 되었다. 멍하니 펍의 천장을 올려다보던 맥코이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곤 술잔을 집었다. 커크는 그런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술은 내가 사죠. 뜨거운 것을 만지기라도 한 듯 맥코이가 몸을 흠칫 떨며 커크를 바라봤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맥코이를 향해 커크는 싱긋 웃으며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커크가 바텐더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맥코이는 그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왜 미스터 커크가 삽니까?”
“짐이라고 부르래도요.”
“왜요, 내가 불쌍합니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맥코이가 말했다. 무언가를 참는 듯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의 눈은 눈물이 고인 탓인지 기묘하게 반짝거렸다. 커크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는 손을 뻗어 맥코이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란 것인지 그는 어깨를 흠칫 떨며 얼굴을 뒤로 물리려 했다. 그러나 커크가 뺨을 쓸던 손을 조금 더 뒤로 뻗어 맥코이의 목덜미를 감싸 쥐는 것이 더욱 빨랐다.
“내가 술을 사려는 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에요.”
“그럼 왜….”
“우리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죠.”
“…우리?”
“그래요, 우리.”
레너드와 나, 우리말이에요. 커크의 눈이 예쁘게 휘었다. 맥코이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커크를 바라볼 뿐이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커크는 그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마주 댔다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꺾었다. 나가요. 뺨을 간질이는 입술에서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맥코이는 술기운이 올라오는지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이미 자신은 커크의 손에 이끌려 펍을 나서고 있었다. 뺨에 닿는 밤공기는 서늘했고, 제 손목을 붙잡고 있는 커크의 손은 뜨거웠다. 그 온도차에 맥코이는 취기가 더욱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맥코이를 더욱 취하게 하는 것은 갑작스럽게 닿은 커크의 입술이었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거야, 레너드.”
긴 키스가 끝났다. 입안을 끈질기게 헤집던 혀가 아랫입술을 핥았다. 산소가 부족해진 머릿속이 엉망으로 뒤섞였다. 그 덕에 잠깐 떠올랐던 의문은 다시 가라앉았다. 뭐지? 무엇이었지? 생각하며 숨을 몰아쉬던 그는 제 뺨을 다정스레 감싸 쥐는 손길에 눈을 깜빡였다. 엄지손가락이 조심스레 움직이며 뺨을 쓸었다. 간질거리는 그 느낌이 좋아 맥코이는 무의식적으로 그 손바닥에 뺨을 비볐다. 커크는 고개를 숙여 맥코이의 뺨과 목덜미에 쪽쪽 입을 맞추며 계속 그의 이름을 불렀다. 레너드, 렌, 레너드. 애정을 가득 담아서 커크는 맥코이의 이름을 불렀다. 맥코이는 그런 커크의 목소리에서 항상 자신을 저렇게 불러주던 다른 이를 떠올렸다. 그러나 요 몇 달 동안은 아니었다. 레너드!그녀는 언제부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맥코이의 가슴을 후벼 팠다. 레너드. 커크는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의 시선에는, 목소리에는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 갑자기 복받치는 감정에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맥코이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짐.”
“정말이지…너무 오래 기다렸어, 레너드.”
나도, 나도 그래. 그러나 맥코이는 대답 대신 커크의 목을 끌어안았다.
∴
벨을 누른 뒤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던 여자는 여전히 반응이 없는 것에 짜증을 내며 문을 세게 두드렸다. 발길질까지 할 기세로 한 걸음 물러서던 그녀는 달칵, 하고 돌아가는 손잡이에 화를 억누르며 자세를 바로 했다.
“대체 집에 있으면서 왜 이렇게 늦….”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막 잠에서 깨어났는지 엉망이 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저를 바라보는 남자는 그녀가 찾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여기 있으면 더 이상할 사람이었다.
“…제임스?”
“여기엔 더 이상 볼일이 없으실 텐데.”
“당신이 어떻…어떻게 여기에?”
“왜, 여기 있으면 안 되나?”
애인의 집에 있는 것도 문제가 되나? 당신들 두 사람은 이제 아무런 관계도 아니잖아. 현관문에 기대며 팔짱을 낀 커크는 부드럽게 웃었다. 피가 싹 빠져나가기라도 한 듯 여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애인이라고?!”
“그래, 애인.”
“허, 말도 안 돼! 자기 애인이 대체 누군데!”
“본즈.”
“무…뭐? 본즈?”
“응, 본즈. 레너드 맥코이 말이야. 그는 신이 내 갈비뼈를 빼내서 만든 사람이니까, 본즈라고.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아봤거든. 그가 바로 신이 만들어준 내 반쪽이구나, 하고 말이지. 얼마나 잘 어울리는 애칭이야? 물론 당신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것을 달고 있어서 애를 좀 먹긴 했지만.”
커크는 손을 뻗어 굳어 있는 여자의 뺨을 쓸었다. 가엾어. 본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은 그래도 당신을 계속 아껴줬어. 나랑 바람을 피우고 있든 말든 상관도 않고 말이야. 쯧쯔, 하고 혀를 찬 커크는 여자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입술과 뺨이 닿았다 이내 떨어졌다.
“그는 네게 너무나 아까워. 처음부터 맞지 않는 짝이었지.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오지 마. 아직 정리 못한 게 있다면 변호사를 통해서 연락을 해.”
나한테도 말이야. 더 이상의 연락은 사절이야. 자신을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파란 눈이 차갑게 얼어있었다. 여자의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륵 흘렀다. 잘 가.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그녀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 커크가 몸을 뒤로 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