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8일(토)에 개최된 메이즈러너 온리전 In The Maze에서 낸 민호뉴트 배포본 "The Rose of Desert"를 공개합니다. 원래 계획했던 원고의 5분의 1 혹은 5분의 2 정도 작성된 원고입니다ㅠㅠ 네, 원래는 떡제로 50페이지 이상이 되는 원고였는데 개인적 사정으로 배포본으로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면 표지를 이미 받아버렸거든요ㅋㅋㅋㅋㅋ 존잘님의 글씨와 표지를 이미 받았기에 아예 펑크낼 수는 없어서 일단 작업된 것까지만 작성해서 배포본으로 엮었습니다.
배포본으로 끝날 원고는 아닙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완성을 시키고 싶은 욕심이 많아서 차근히 원고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책을 낼 행사가 있다면 참여를...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작업하면서 많이 들었던 노래와 함께 배포본 원고를 올립니다.
일정 시일동안 공개한 뒤 비공개로 수정할 예정입니다. 그 때까진 즐겁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즐거운 행사 만들어준 주최님께 감사드리고 배포본을 가져가주신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득한 그 옛날, 바닷가엔
외롭고도 쓸쓸한 전설이 있었네.
밀려오는 파도, 바람소리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저 슬픈 이야기.
Puff, the magic dragon lived by the sea
And frolicked in the Autumn mist in a land called Honah-Lee
Little Jackie Paper loved that rascal Puff
And brought him strings and sealing wax and other fancy stuff
이야기의 시작은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은 모두가 예스러운 전설을 믿고 지내던 시절까지 말이다.
그 전설의 중심에는 용과 그가 사랑하는 보물이 있었다. 전설 속에서 자주 회자되는 그 용은 흉포하고 사악하고 이기적이라고 묘사되는 용들과는 달리 아주 조용한 성격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가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의 용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어느 용보다도 난폭하고 사나웠다. 그런 그의 성격을 변하게 한 것은 어느 보물을 손에 넣은 뒤부터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용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보석들이니 아마도 보기 힘든 보석을 찾은 게 아니겠냐는 이야기가 넘쳤다. 모험을 좋아하거나 보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바다 너머로 향했다. 보물을 찾자마자 용은 먼 바다의 어느 작은 섬을 터전으로 삼고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마저도 특이했다. 본디 용들의 터전은 높은 산이었다. 그러나 그는 바다를 택했다. 인간들의 발길이 닿기 힘든 곳으로. 그 때문에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용의 보물은 어마어마한 것으로 부풀어져갔다.
재력이 있으며 욕심이 많았던 귀족들은 너도 나도 앞 다투어 바다로 사람들을 내보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귀환한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꺼려했다.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용의 보물은 더욱 더 어마어마한 것이 되어갔고, 보물에 대한 귀족들의 열망은 갈수록 커져갔다.
왕은 더 이상 이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다. 있을지 없을지 모를 용의 보물을 위해 자신의 백성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기사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규모 단위의 탐사대가 꾸려졌다.
이 탐사대에 대한 이야기 역시 자세히 전해지지 않았다. 그저 ‘탐사가 성공했다.’ 라고만 전해질 뿐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이들을 언제나 궁금하게 만들었던 용의 보물 역시도 확실하게 전해지지 않았다. 혹자는 용의 보물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이야기도 했다. 그럴지도 몰랐다. 탐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기사는 왕에게 보고를 마친 뒤 기사의 작위를 내려놓고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왕이 큰 포상을 내리며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기사는 정중히 거절하였다.
영지로 돌아온 기사는 식물을 키우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화분에서 키우던 것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그는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고, 영지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났을 땐 본격적으로 정원을 돌보았다. 나중에는 성의 뒷벽을 허물고 넓혀야 할 정도로 정원을 크게 만들었다. 성벽을 허물정도로 커진 정원의 산책로는 점점 복잡하게 변해갔다. 성의 가장 높은 탑에서 내려다보면 정원은 마치 거대한 미로처럼 보였다. 공간의 제약으로 더 이상 정원을 넓힐 수 없을 즈음, 기사는 정원의 가장 중심에 장미 담장을 만들고 그 안에 별채를 만들었다. 그리고 숨을 거둘 때까지 기사는 그 별채에서만 생활했다. 기사의 뒤를 이어 젊은 영주가 된 아들 역시도 아버지가 죽은 후 그 별채에 발을 들이는 일이 많아졌고, 제 아들에게 영지를 물려준 후에는 아버지가 그러했듯 별채에서 머무르다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은 대를 이어 그 정원을 아끼는 영주들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곧 그네들의 특이한 이력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천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기사와 용의 보물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의 일부분이 되어 흐릿하게 변했다. 그러나 미로정원 중심에 있는 별채, 그 주변을 에워싼 담장을 가득 메운 장미는 언제나 화려하고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먼 과거로부터 시작되어 흐릿하게 변해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간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다시 시작한다.
∴
절대로 안쪽의 장미 정원으로는 들어가면 안 된단다. 길을 잃고 나올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엄마의 일을 도울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 민호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절대로 영주님의 장미 정원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얼마나 자주 들었냐면 처음에 들었을 때에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두 번째에는 그보다 풀어진 얼굴로 알았다고 대답했으며, 민호가 16살이 되던 해에는 심드렁하게 한 귀로 흘려도 될 정도였다. 그리고 사실, 동화 속 미로처럼 꾸며진 커다란 정원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장미 정원은 소년의 관심을 잡아 끌만한 매력이 없었다. 오히려 화려하게 장식된 미로 정원의 입구에서 간간히 티타임을 가지던 영주의 딸에게 더욱 관심이 많았다.
민호는 정원 주변에 흩어진 나뭇가지들과 꽃잎들을 정리하며 힐끗힐끗 영주의 딸을 훔쳐보았다. 햇살을 가려주는 파라솔 아래에서 영주의 딸은 맞은편에 앉은 귀족의 영애와 이야기를 나누다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돼, 렉시!" 영주의 딸이 아끼는 애완견 렉시는 순식간에 정원의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소년과 소녀의 시선이 얽혔다. 민호는 망설임 없이 정원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정원의 구조는 익숙했지만 강아지가 어디로 갔는지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렉시! 달리던 것을 멈춘 소년은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며 정원의 곳곳을 살폈다. 그러나 강아지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 참. 망할 놈의 강아지. 어디로 간 거야? 생각하던 그는 문득 자신이 찾아보지 않았던 곳이 있음을 깨달았다.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엄마가 신신당부하던 장미 정원. 그래, 거기라면. 민호는 살짝 고개를 드는 망설임을 한 숨을 쉬며 내리 눌렀다.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장미향에 이미 자신이 장미 정원 근처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며 천천히 장미정원의 입구로 다가갔다. 그러나 고풍스러운 무늬가 새겨진 정원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어떡한다. 민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장미덩쿨로 휘감긴 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걸었다. 멍! 하는 소리는 갑작스레 들려왔다. 그는 걸음을 멈춘 채 귀를 기울였다. 멍멍!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민호는 천천히 걸으며 자신이 들어갈 만한, 혹은 뛰어 넘을만한 곳이 있을지 살폈다. 조금 더 벽을 따라 걷자 장미덩쿨이 뻥 뚫려있는 구멍을 찾았다. 자신의 얼굴 정도는 충분히 들이밀 수 있을만한 크기였기에 민호는 그 구멍에 가까이 다가갔다.
장미 정원을 누군가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영주님의 정원을 돌보는 자신의 부모님은 영토 내에서 가장 솜씨가 좋은 정원사들이었다. 그런 두 분도 손대지 않던 곳이 바로 이 곳 장미 정원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거의 버려진 곳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장미 정원은 영주의 커다란 정원 내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색색의 장미들이 아름답게 얽힌 세계의 중심에는 오두막처럼 보이는 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나무 아래에-
"그래, 착하지. 우리 렉시."
렉시는 옆으로 누워 헥헥댔다. 렉시의 호흡에 맞춰 느리게 손이 움직였다. 영주의 딸보다 훨씬 더 애정 어린 손길이었다. 나뭇가지의 틈새 사이로 뻗은 햇살이 머리카락에 닿을 때마다 금가루처럼 머리칼이 반짝거렸다. 바람이 불자 아이는 렉시를 쓰다듬지 않는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렇게 고개를 든 아이와 민호의 눈이 마주쳤다. 놀라서 커다랗게 떠지는 눈은 까만색이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이내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아이는 렉시를 쓰다듬다 말고 벌떡 일어나 민호에게로 달려왔다. 도망가야하나 하고 민호가 망설이던 사이 장미덩쿨의 구멍으로 아이가 도착했다.
"안녕?"
아이가 가까이 오자 꽃향기가 훨씬 진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혹시 말 못해?"
"아…아냐."
"다행이네. 나 정말 오랜만에 대화를 해보는 거라서."
오랜만이라니. 민호의 얼굴 위로 의문이 떠오르자 아이는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아냐, 아무것도. 하고 얼버무린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민호는 입을 열었다.
"괜찮아. 난 그저.…렉시만 데리고 가면 돼."
"렉시를 찾으러 왔구나."
여상스러운 말투와는 다르게 얼굴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왠지 모르게 민호는 아이의 그 표정이 무척 안타까워서 재빨리 말했다. 렉시만 데려다주고 다시 올게. 바닥을 향하고 있던 시선이 다시 민호를 향했다. 다시 온다고? 아이가 확인하듯 묻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다시 올게. 약속해."
"…응. 알겠어."
아이의 얼굴 위로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그 요정 같은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렉시를 넘겨받을 때 언뜻 스친 손가락들이 따뜻해서 또 안심이 되었다. 요정의 손을 잡아본 적은 없지만 인간처럼 따뜻하진 않을 것이기에.
"금방 올게. 어…그러니까…."
"내 이름은 뉴트야."
"…응, 금방 다시 올게, 뉴트."
렉시를 품에 안고 일어나 달리려던 민호는 아, 하며 다시 구멍 안을 바라봤다. 자신을 뉴트라고 소개한 아이는 여전히 구멍 반대편에서 자신을 바라봤다. 그 안으로 손을 넣어 뉴트의 오른쪽 손등을 꼭 쥐었다.
"나는 민호야."
"민호…."
"응. 이따 봐, 뉴트."
그리고 그는 정원을 나가기 위해 달렸다. 장미 정원이 점점 멀어졌지만 그 향기는 전혀 옅어지지 않았다.
마치, 민호의 마음속에서 장미가 피어난 것처럼.
∴
향기는 형체가 없었다. 화초들을 돌보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주변에 맴돌고 있었지만 눈으로 쫒을 수는 없었다. 향기는 코와 손끝에, 그리고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에 잠시 머물렀다 금방 사라졌다. 민호는 향기가 옅어지는 제 손끝을 코에 대고 눈을 감곤 했다. 그렇게 있으면 옅어지는 향기는 정원의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아가씨의 드레스 자락처럼 팔랑거렸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특별했다. 그 아이, 뉴트라고 자신을 소개한 소년을 만난 오늘은. 민호는 침대에 누워 새카만 천장을 올려봤다.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까만 천장에 반짝반짝, 뉴트의 머리카락을 닮은 금색 점들이 생겨났다. 몇 번을 더 깜빡이자 그 금색 점들은 곧 선이 되었고, 선들은 금방 면을 만들어 냈다.
그 면 위로 떠오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민호는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쉬이 잠이 들기엔 틀린 듯했다.
∴
달이 가장 높이 떠 있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따뜻했다. 혹한기 전에는 언제나 바람이 따뜻했다. 겨울이 금방 오겠구나 생각하며 민호는 망토 죔쇠를 약간 느슨하게 만들고는 모자를 뒤집어썼다. 영주는 늦은 시간에 영지를 돌아다니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들켰다가는 추방당하거나 사형이었다.
조심스럽지만 빠르게 움직여 민호는 성 안으로 들어섰다. 영주의 성은 왕도 탐낼 정도로 튼튼하고 멋진 성이었고 역사가 깊었다. 그랬기에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비밀문들이 많았다. 민호는 어릴 적 부모를 따라 영주의 성에 왔다가 우연히 발견한 비밀문 중 하나를 가끔 활용하곤 했다. 그러나 그 비밀문은 보통 영주의 성에서 나가야 할 시간을 놓쳤을 때 이용했을 뿐, 오늘처럼 성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활용했던 적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신경을 써가며 민호는 천천히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 그는 성 안으로 들어섰다. 허리를 펼 생각은 첨부터 없었다. 민호는 더욱 더 몸을 낮추고는 빠르게 정원으로 향했다.
낮 동안 자신과 자신의 부모가 다듬어둔 식물들에서 나는 특유의 맑은 향이 한층 더 짙었다. 그러나 민호는 그 식물들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로지 그는 달리다시피 하며 걸었다. 장미덩쿨이 가득한 장미 정원을 향해서 말이다. 그 장미 정원에 도착하자마자 민호는 마음 저 뒤에서부터 밀려드는 허탈함에 제 머리를 쥐어박았다.
멍청이. 이 늦은 시간이 그 아이가 깨어 있을 리가 없잖아.
숨을 고르면서 한숨을 푹 쉰 민호는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어쩐다. 장미덩쿨로 뒤덮인 벽을 따라 걷던 그는 낮에 뉴트와 만났던 작은 틈새를 찾았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빠르게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집 안은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담을 뛰어 넘고 싶어도 붙잡고 올라갈 만한 곳이 없었다. 이제는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북북 긁던 그의 눈에 굵고 튼튼해 보이는 넝쿨이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살폈다. 그것은 장미덩쿨이 아니었다. 훨씬 더 두껍고 튼튼한 것이었다. 그 넝쿨의 종류가 무엇이 되었든 민호는 신에게 감사드리며 단숨에 그 넝쿨을 쥐어 잡고 담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넝쿨은 담장의 뒤편에까지도 튼튼하게 자라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선 민호는 자세를 낮추고 주변을 살폈다. 벌레들의 울음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부엉이 소리들만 가득했다.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려고 신경 쓰며 천천히 집 근처로 다가갔다.
은은한 촛불로 밝힌 방 안에 뉴트가 있었다.
소담한 집과 어울리는 작은 소파에 앉아 무릎에는 담요를 덮고 책을 읽고 있었다.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과는 달리 손바닥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갔다. 바지에 손을 몇 번 문질러 닦은 그는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랐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린 뉴트가 고개를 들었다. 안녕. 입을 벙긋거려 인사하는 민호와 눈을 마주친 뉴트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다.
“보통은 현관문을 두드리지 않아?”
“글쎄. 그렇게 따지면 우린 현관에서 만난 것도 아니잖아?”
양 손으로 담장에 나 있던 작은 틈새 모양을 그리는 민호의 모습에 뉴트는 피식 웃었다.
“이 시간에 나와도 되는 거야?”
“그러는 너는. 왜 안자고 이러고 있어?”
뉴트는 대답대신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거 마시고 빨리 가라고? 미적지근하게 담긴 차를 가리키며 민호가 말했다.
“시간이 늦었어.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도.”
“무모하게 그러지마. 시간은…시간은 있어.”
너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은걸. 그러나 민호는 속으로 생각한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은은한 불빛 아래 뉴트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다시…또 와도 돼? 머뭇대며 민호가 말했다. 뉴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호호 불어 조심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있어. 그러니까 조급해하지마.”
“…알겠어.”
단숨에 차를 마신 민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게.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긁으며 인사했다. 뉴트는 시선만 살짝 들어 그런 민호를 올려다봤다. 민호는 그 시선을 슬쩍 피하며 손가락으로 계속 테이블만 긁어댔다. 뉴트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민호는 제 손가락을 잡아 오는 따뜻하고 하얀 손등을 내려다봤다. 뜨거운 찻잔을 쥐고 있었기에 따뜻한 것인지 원래도 따뜻한 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앞으로 알아 가면 되는 것이니까.
민호는 뉴트에게 붙잡힌 손을 뒤집어 그 손을 마주잡았다. 가늘고 작은 손에는 살집이 거의 없었다. 그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민호는 두 손으로 뉴트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뉴트의 손을 붙잡은 제 손등에 입술을 대었다. 뉴트는 그런 민호를 말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또 만나. 뉴트의 손을 놓고 몸을 돌리며 민호가 인사했다. 그래, 또 만나. 뉴트는 앉은 채로 인사했다.
가장 높은 곳에 떠 있던 달이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민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뉴트의 집을 둘러싼 담장 가득 피어난 장미향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뉴트의 손을 잡았던 제 손에서 나는 향과 닮은 장미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