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사랑하는 크오커플입니다. 스타트렉(AOS) 본즈와 피마새의 정우 규리하ㅠㅠ
짧게 썼던 것들을 모으고 모아 12페이지짜리 중철본으로 만든 원고입지요 후후
그래도 12분의 트친분들께 노나드렸던 기념비적인 것입니다 하하하(도망감
이 글을 쓸 때 혼자 좋아했던 것은 역시나 정우가 본즈를 어떻게 부를까 하고 고민하던 시점.
어의라는 말을 생각해내고 혼자 좋아서 무릎도 탁 쳤던...ㅋㅋㅋㅋㅋㅋ
쓸 때 들었던 노래는 이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울릴듯하여....><
Good night
잠이 오지 않으세요? 차가운 성벽에 포개놓은 팔이 시려와 슬슬 들어갈까 고민하던 맥코이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생글 웃는 얼굴의 어린 군주를 향해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 눈을 동그랗게 떴던 정우는 이내 까르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어의님, 지금은 밤이에요.”
“네?”
“모든 것이 조용한 시간이죠. 그리고 드디어, 진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영문을 몰라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말을 곱씹은 본즈는 한참 뒤에야 이해하고는 푸스스 웃었다. 정우 역시도 어깨를 떨며 웃었다. 맥코이는 뒷머리를 긁적이다 그녀의 차림새가 꽤 얇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미간에 힘을 주었다. 정우는 혀를 날름 보이고는 사뿐히 걸어와 본즈의 옆에 섰다.
“들리세요, 어의님?”
“지금은 밤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정우.”
“어의라는 것은 직업이지 계급이 아니니까요.”
“변경백은 직업군에도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어의는 계급에 들어가지 않으니까요.”
나 참. 맥코이는 졌다는 듯 두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미소를 지은 정우는 한 번 더 자신의 질문을 반복했다. 맥코이는 무엇을 말입니까, 하고 되물었다. 음, 검지로 턱을 쿡 찍어 고개를 기울인 정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규리하가 미안하다고 하네요.”
“네?”
“어의님을 흘러들어오게 해서 미안하다고요.”
“…….”
지금 미안해하시는 건 규리하가 아닌 당신인 것 같은데요. 그러나 맥코이는 말하지 않았다. 어두운 얼굴로, 시선을 살짝 내리깐 소녀는 숄을 꽉 쥐었다. 푸르스름한 달빛 때문에 그녀의 손은 더욱 창백해 보였다. 손을 몇 번 쥐었다 편 맥코이는 피식 웃으며 정우의 손등을 감쌌다.
“정우도, 규리하도 미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냥…그냥 사고였으니까요.”
그랬다. 우연이라는 것이 빚어낸 어쩔 수 없는 사고. 탐사 중이던 행성이 붕괴되며 만들어진 폭풍에 휘말린 것은 분명한 사고였다. 등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맥코이는 주변을 살피려고 노력했다. 안 그래도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에 시야가 더욱 흐렸고, 매우 추웠다. 방향을 알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고개를 움직여 발자국 소리를 찾으려 했다. 부옇게 번진 시야로 사람의 형태와 비슷한 무언가가 뛰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숨을 쉴 수 있는 공기가 있고, 겉보기에는 저와 비슷한 인간이 살고 있는 곳에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이 툭 끊어지는 것 같았다. 제 옆에 쪼그리고 앉아 뺨을 다독이는 흰 손의 주인이 작은 소녀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맥코이는 까무룩 기절했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보인 커다란 얼굴(후에 도깨비 탈해는 맥코이에게 꽤 상처를 받았다며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하소연했다.)에 기절할 듯 놀라긴 했지만.
“오히려 다행인 축에 속하죠. 규리하공…아니, 정우에게 발견되어서 치료도 받고, 이렇게 살아있으니까요.”
“어의님….”
“저희 동료들도 노력하고 있을 겁니다. 저는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정우의 손등을 토닥거린 맥코이가 한숨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 때는 정우께 우리의 함선을 구경시켜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아! 전에 그려주셨던 그것 말씀이지요? 함선이라는 말에 정우가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스카티가 봤다면 이게 어디가 엔터프라이즈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법한 자신의 그림을 떠올린 맥코이는 민망함에 헛기침을 하며 저를 바라보는 정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활짝 웃으며 한 번 폴짝 뛰어오른 덕에 흐트러진 그녀의 숄을 맥코이가 정리해주며 말했다.
“정우도 분명 좋아할 겁니다.”
“네, 어의님의 친구 분들도 만나 뵙고 싶어요!”
“당연히 소개시켜 드려야죠. 아, 하지만 제임스 커크라는 녀석은 꼭 조심하셔야 합니다. 예쁜 아가씨들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거든요.”
“와아! 어떻게 정신을 못 차리시는데요?”
으음,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린 맥코이의 얼굴에 정우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정리해서 말해야할지 고민하던 그는 그냥 고개를 흔들며 제 곁에서 떨어지시지만 않으면 됩니다,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제임스 커크라는 분의 기준에는 제가 못생긴 아가씨일 수도 있는데요.”
“천만에요. 정우는 정말 예쁜 아가씨에요.”
그러니 남자들이 춤추자고 요청해도 손을 함부로 주시면 안 됩니다. 엄격한 표정으로 힘주어 말하는 맥코이에 정우도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둘은 엄격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다 다시 웃었다.
“바람이 찹니다. 그만 들어가지요.”
고개를 끄덕인 정우는 맥코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보폭에 맞춰주며 맥코이는 성 안으로 들어갔다. 정우의 방까지 가면서 맥코이는 커크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우는 커크의 외모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금발머리에 파란 눈이라니! 맥코이가 알았다면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겠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 커크의 이미지는 점점 책에서 나오는 엄청나게 예쁜 요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좋은 꿈꾸십시오, 정우.”
“어의님도요. 아, 어의님!”
몸을 돌리려던 맥코이는 저를 붙잡는 정우에 눈썹을 살짝 까딱거렸다. 정우가 손을 뻗어 와 영문을 모른 채로 맥코이는 상체를 숙였다. 작은 두 손이 맥코이의 뺨을 감쌌다. 맥코이의 시야에 정우의 입술과 턱이 크게 들어왔다. 그리고 쪽, 발랄한 소리와 함께 정우의 입술이 자신의 이마에 닿았다 떨어졌다.
“악몽은 없을 거예요.”
좋은 꿈꾸세요. 그리고 그녀는 재빠른 동작으로 문 안으로 사라졌다. 허리를 숙인채로 눈만 크게 뜨고 있던 맥코이는 damn it, 하고 내뱉었다. 하여튼, 가끔 짐을 떠올리게 한다니깐. 크흠, 헛기침을 하며 돌아서는 맥코이의 귀 끝이 조금 붉어졌다.
첫눈, 당신과 함께
와아, 눈이 오네요!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선 정우가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을 활짝 열고 손을 쑥 내민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우를 따라 일어난 맥코이도 그녀의 뒤에 섰다. 꼼질대며 허공을 헤엄치는 정우의 손가락 주변으로 먼지뭉치처럼 자그마한 것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한참동안 손장난을 치던 정우가 왼손으로 창턱을 잡고 상체를 불쑥 내밀었다. 창밖과 그녀를 번갈아 보고 있던 맥코이는 기겁하며 그녀의 어깨와 허리를 재빨리 감싸 안았다. 규리하공, 위험합니다. 화를 내지 않기 위해 억누른 목소리가 이상하게 꺾였다. 그러나 정우는 맥코이를 돌아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배시시 웃을 뿐이다.
“보세요, 어의님. 눈이에요.”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규리하공.”
“그럼, 이 눈이 어의님과 함께 보는 첫 눈이라는 것도 아시나요?”
커졌던 눈이 예쁘게 접힌다. 맥코이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말에 오히려 당황했다. 까르르 웃은 그녀는 이제 안심하고 몸을 쑥 내밀었다. 맥코이는 더욱 단단하게, 하지만 그녀가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로 팔에 힘을 줘 버텼다.
첫눈이 으레 그러하듯 눈송이는 작았다. 자신보다 따뜻한 체온을 가진 정우의 손바닥에 닿자마자 금세 녹아버릴 정도로. 정우는 눈에 띄게 아쉬워했다. 그 이유를 묻자 답지 않게 입술을 살짝 내민 그녀가 투덜거린다. 규리하는 추운 지방이에요. 맥코이 역시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가 이곳에서 지낸지 이제 다섯 달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비오는 여름이 그렇게 추울 수 있다는 것을 맥코이는 규리하에서 처음 깨달았다. 우연히 산책을 나왔던 정우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얼어 죽었을지도 모를 만큼.
그런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그녀의 말에 맥코이는 입술을 달싹이다 그냥 정우가 말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정우는 그대로 입을 꾹 닫았다. 여전히 창밖의 눈을 원망스레 바라보며. 쑥 내민 몸을 다시 끌어와 허리를 곧게 세울 생각이 아예 없는지 몸을 내민 상태 그대로 팔짱을 끼려다 팔꿈치를 창틀에 대고 오른손을 들어 뺨을 감싼다. 자연스레 정우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규리하님 너무하세요.”
“…….“
“어의님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첫눈이에요. 건네 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금방 녹으시면 속상해요.”
“…저, 규리하공….”
“물론 어의님이 직접 손을 내밀어 잡아보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건네 드리고 싶은걸요.”
규리하에서, 저랑 같이 맞이하는 첫눈을요. 맥코이는 다시 침묵했다. 정우가 말할 때마다 비녀 끝에 달린 장식이 흔들거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을 아래로 조금 더 내렸다. 까만 그녀의 머리 위로 눈송이가 붙었다. 맥코이는 정우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털어주었다. 고개를 살짝 뒤로 꺾어 정우가 맥코이를 바라봤다. 맥코이는 정우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한 팔로 정우의 허리를 단단하게 지탱하며 그녀의 뺨을 감싼 손등을 붙잡았다. 정우가 웃었다. 맥코이도 같이 웃었다. 그는 겹쳐 잡은 손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정우의 팔이 자신의 팔보다 짧았기 때문에 맥코이는 팔꿈치를 조금 구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맥코이의 손바닥이 펼쳐지자 그 위에 있던 정우의 손도 활짝 벌어졌다. 그 손바닥 위로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금방 녹아 물이 되어버린 눈송이었지만 괜찮았다. 정우가 까르르 소리 내어 웃었다. 맥코이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규리하에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공중무도회
맥코이는 혀를 찼다. 그러나 앞에 선 도깨비 무사장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는 손바닥 위에 올려둔 불씨를 가지고 장난만 칠뿐이었다. 탈해 무사장. 맥코이는 가까스로 짜증을 억누르고 그를 불렀다. 생긴 것보다 훨씬 순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도깨비가 어깨를 슬쩍 떨었다. 조금만 더 흔들면 된다. 맥코이는 속으로만 웃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목소리를 한껏 낮게 하면 엘시 에더리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최대한 생각하면서 탈해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렀다. 역시나 탈해는 그 큰 눈을 끔뻑거리며 화들짝 놀라 맥코이를 바라봤다.
"이제야 저를 보시는군요. 무사장."
"어, 그러니까…어의님."
"규리하공은 어디 계십니까?"
손가락만 꼼질대며 머뭇거리던 탈해는 정우에게 사과하며 그녀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장소를 들은 맥코이는 진심으로 화를 냈다. 울상을 지으며 탈해는 연신 죄송하다고 맥코이에게 손을 싹싹 빌었다.
♪ ♪ ♪
비녀를 뽑아내자 검은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날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한 번 훑어내고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언제 오시려나. 중얼거린 정우가 어깨를 떨어뜨리며 숨을 길게 쉬었다. 그 덕분에 어깨에 둘러져 있던 숄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앗, 하면서 숄을 잡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빠르게 숄을 잡아주는 커다란 손에 정우는 눈을 크게 떴다가 활짝 웃었다. 어의님! 맥코이를 부르며 고개를 든 그녀는 잔뜩 찌푸려진 그의 얼굴에 어깨를 움츠렸다.
“…화나셨죠?”
“…….”
“저, 어의님.”
“…제가 화날 줄 아셨던 분이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어제까지 감기로 고생하셨으면서. 왜 또 옷은 이렇게 얇게 입으신 겁니까? 규리하가 춥다고 저한테 이야기하셨던 분이 누구셨죠? 끊임없이 쏟아지는 잔소리에도 정우는 웃을 뿐이었다. 세심하고 다정하게 어깨의 숄을 정리해주며 이제 그만 들어가자고 말하는 맥코이의 손을 정우가 잡았다. 눈썹을 밀어 올리곤 왜 그러시냐고 물어보려던 그는 정우의 손이 꽤 차갑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인상을 썼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어의님의 그 표정은 곱지 않아요.”
“공의 손이 이렇게나 차가운데 제가 그럼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의님의 손은 따뜻하니까요.”
생긋 웃은 그녀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맥코이도 덩달아 고개를 들었다. 회색의 하늘에 투명한 젤리를 덧씌워 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제 손등을 덮는 작은 손에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불어온 바람에 흐트러진 앞머리가 까맣다. 눈꺼풀에 가려졌다 다시 나타나는 눈도 까맣다. 익숙한 까만 머리, 까만 눈, 흰 피부. 그러나 그녀의 귀는 동그랗다. ‘미스터 스팍만 까만 머리에 까만 눈은 아니지. 미스터 술루도….’ 같은, 오랫동안 보지 못한 동료들을 생각하며 맥코이는 저도 모르게 빈손을 들어 정우의 귓바퀴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가만히 맥코이를 올려다보고 있던 정우가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손을 펼쳐 그런 그녀의 옆머리를 감쌌다. 정우의 입술이 움직였다. 환상 계단은 이제 좀 익숙하세요? 그는 잠시 동안 고민했다. 맥코이가 규리하에서 하늘치를 처음 본 것은 두 달 전이었고, 정우는 그에게 속성으로 환상계단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정우처럼 날아다닐 정도는 아니었지만 맥코이는 제법 괜찮을 정도로 환상계단을 사용하게 되었다. 하늘치가 규리하에 머문 4일 동안.
배우는 것이 빨랐고, 제가 원래 살던 세상에 다양한 종류의 이동수단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고 맥코이는 생각했다. 그러나 오롯하게 자신의 상상에 의해 유지되는 환상계단을 다시 사용하라고 하면 정우의 표현처럼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무어라 대답할지 고민하던 중, 정우는 불쑥 다른 말을 꺼냈다.
“저번에 알려주셨던 춤, 까먹었어요.”
“네?”
“잊어버렸어요. 그러니 다시 가르쳐주세요.”
이렇게 손을 잡던가요? 제 고개와 맥코이의 손바닥 사이로 작은 손을 밀어 넣었다. 자연스레 두 손바닥이 마주했다. 맥코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제가 계속 붙잡고 있는 동안 따뜻해진 정우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제 팔 위에 공의 손을 얹으십시오. 정우가 그렇게 하자 맥코이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살짝 들어 올렸다. 잠시 동안 공중에 붕 떠 있던 정우의 두 발이 맥코이의 발등 위에 닿았다.
천천히 맥코이가 발을 움직였다. 옆으로, 옆으로, 다시 한 걸음 앞으로. 그녀가 춥지 않도록 회전할 땐 더욱 느리게 움직였다. 정우의 까만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품이 낙낙한 그녀의 원피스가 슬쩍 퍼졌다가 가라앉았다. 뒤로 발을 뺐다. 다시 한 발 뒤로, 부드럽게 한 바퀴를 돈다. 그리고 옆으로. 정우가 맥코이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이틀 뒤, 하늘치가 규리하에 나타났다. 전날 기침을 꽤 심하게 했던 정우의 목에 두툼한 목도리가 둘러져 있었다. 여섯 번에 걸친 꼼꼼한 점검(?)이 끝나고 나서야 정우는 맥코이의 손을 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딱딱하게 굳은 맥코이의 얼굴에 웃음을 터뜨린 그녀는 치맛자락을 잡고 인사했다. 맥코이 역시 그녀에게 정중한 동작으로 인사했다. 한 발자국 다가온 정우가 내밀어진 맥코이의 손바닥에 제 손바닥을 마주 댔다.
단단한 팔이 허리를 붙잡아 들어 올린다. 사뿐히 맥코이의 발에 선 정우는 그의 팔에 손을 얹고 고개를 들었다. 심호흡을 몇 번 한 맥코이도 턱을 살짝 당겨 그녀를 내려다봤다. 조심스럽게 맥코이의 발이 움직였다. 옆으로, 옆으로, 뒤로 발을 빼며 부드럽게 반바퀴를 돈다. 그리고 다시 옆으로, 다시 뒤로.
규리하의 성벽에 서서 춤을 추는 둘을 바라보던 탈해가 큼지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을 몇 번 휘둘렀다. 둘의 주변에 퐁퐁 불꽃 인간들과 동물들이 나타났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도 있었고, 커다란 나무들도 만들어졌다. 정우가 신이 나서 주변을 돌아봤다. 탈-해! 손을 마구 흔들며 정우가 소리쳤다. 탈해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맥코이만이 약간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헤어짐, 그 아쉬운 순간
맥코이는 쉬이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우뚝 멈춰버린 그의 팔을 커크가 붙잡고 흔들었지만 여전히 맥코이는 자신의 발끝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즈? 의아한 듯 눈을 크게 뜬 커크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미소를 지어주곤 맥코이의 얼굴에 고개를 바짝 붙였다.
“도대체 왜?”
“…겠어.“
“응? 뭐?”
“…안 되겠어, 짐. 나는, 나는 못가겠어.”
What?! 커크는 황당하다는 듯 얼굴을 뒤로 물리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하하, 본즈, 농담도 차암. 아하하. 딱딱하게 굳은 맥코이의 어깨와 등을 툭툭 두드리며 커크는 웃었다. 그의 웃음이 멎을 때 즈음, 맥코이가 고개를 들어 커크를 바라봤다. 젠장. 커크는 맥코이의 처음 보는 눈빛에 당황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뼈만 남은 덕에 체념하는 것이 익숙했던 그가 처음으로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미안해, 짐. 나는…나는….”
“저는 괜찮아요, 어의님.“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온 정우는 꽉 쥐어진 맥코이의 손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가늘고 흰 손가락이 마치 아이를 달래듯 그의 손등을 도닥거린다. 그 온기에 맥코이는 천천히 손에서 힘을 풀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는 고개를 들고 맥코이를 바라봤다.
“어의님껜 어의님의 길이 있어요. 여기 남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닙니다, 저는…규리하공.”
“저를 치료하시며 보셨겠죠. 제 몸에 있는…밤의 다섯째 따님을 통해 어의님께서 무엇을 보셨을지 대충 짐작이 가요. 미안해요. 허락도 없이 함장님께 여쭤봤어요. 혹시 어의님께 아이가 있으신지 하고요.”
맥코이는 어깨를 긴장시키며 커크 쪽으로 시선을 휙 돌렸다. 평소 같았으면 익살스레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을 그는 오히려 표정을 찌푸리며 팔짱을 낄 뿐이었다. 후, 길게 한숨을 내쉰 맥코이는 다른 손을 들어 제 손등 위를 두드리는 소녀의 작은 손을 겹쳐 잡았다.
“다정한 마음, 고마워요. 그러나 그 마음을 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에요, 어의님.”
“규리하공.”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요. 돌아가셔서 이번엔 꼭 따님을 만나세요. 아마 따님도 어의님을 많이 보고 싶어 할 거예요.”
생긋 웃으며 저를 올려다보는 작은 소녀의 얼굴을 말없이 내려다봤다. 맥코이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정우의 손에 잡혔던 자신의 손을 조심히 빼내고 한 발 더 다가가 그녀를 살짝 끌어안았다. 까르르 웃음소리를 내며 어린 군주가 떨리는 그의 등을 감싸주었다. 어의님은 충분히 좋은 아버지세요. 맥코이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소녀는 나직이 속삭였다. 고맙습니다, 정우. 맥코이 역시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 ♪ ♪
탈해, 어의님 얼굴 기억해? 성벽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던 정우가 갑작스레 말했다. 뻐끔이를 입에 물고 같이 하늘을 바라보던 탈해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음, 어느 정도?”
“그럼 도깨비불로 만들어줄 수 있어?”
큰 눈을 끔뻑거린 탈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손을 놀렸다. 섬세하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지나가는 탈해의 손끝에서 조그마한 불씨가 피어났다. 조금씩 일렁거리던 불씨들이 모여 조금씩 형체를 만들어간다. 정우는 그 불씨를 말끄러미 바라봤다. 정돈되어 있던 머리칼, 오뚝하게 솟은 코, 일자로 꼭 다물어져있던 입술, 단단하게 뻗은 목과 너른 어깨, 탄탄한 몸을 감싸고 있던 파란색 옷. 정우는 잠시 그 부분에서 아, 하고 감탄했다. 이목구비를 정확하게 표현해낼 수는 없지만 불꽃의 색을 바꾸는 것 정도는 탈해에겐 손쉬운 일이었다. 허공을 단단하게 딛고 선 다리 역시도 검은색으로 하늘거렸다.
“좋은 꿈 꾸셨어요, 어의님?”
정우는 마치 진짜 그를 대하듯 웃으며 인사했다. 탈해는 그런 정우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곤 손을 까딱 움직였다. 탈해의 손놀림에 맞춰 정중하게 인사한 그는 사뿐 날아 정우의 옆에 섰다. 까르르 웃은 정우는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온기가 없는, 형체뿐인 불꽃이었으나 어쩐지 정우는 마지막으로 저를 안아주었던 그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정우가 천천히 뒷걸음질 쳐 뒤를 돌았다.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불꽃으로 만들어진 맥코이도 걸었다. 성벽을 등지고 선 정우가 한 걸음 내딛자 맥코이도 한 걸음 내딛었다. 햇살로 따끈하게 데워진 규리하의 성벽을 사뿐히 걷는 그녀의 얼굴 위로 해사한 미소가 피어났다. 탈해 역시도 연기를 길게 뿜으며 웃었다.
그리고 이것은 중철본에 포함하진 않았지만 본즈정우 쓴게 하나 더 있어서 추가..^^
똑똑똑. 맥코이는 정중한 동작으로 노크를 했다. 그러나 방 너머에서는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맥코이는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조용했다. 뒷짐을 지고 바닥을 한 번 바라보고 발장난을 몇 번 친 다음에 맥코이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단단한 나무문이 열렸다.
“일어나십시오, 규리하공. 기침시간이 한참 지났습니다.”
커튼을 열어젖혀 끈으로 묶으며 맥코이가 말했다. 밝은 햇살이 잔뜩 쏟아졌다. 눈을 살짝 찌푸리며 방 안의 커튼을 다 묶은 맥코이가 몸을 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불 속에 폭 파묻힌 이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규리하공.”
“…으응.”
“규리하공!”
규리하공, 일어나십시오. 오늘 대장군이 알현을 위해 오신다는 것을 잊으신 겁니까? 이불을 걷어내던 맥코이는 힘겹게 떠지는 눈을 바라보며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 눈이 곧 감기며 제가 잡고 있던 이불 아래로 몸을 파묻는 정우의 빠른 움직임에 결국 화를 버럭 낼 수밖에 없었다.
“와.”
“뭐가 와, 입니까. 대장군께서 곧 오실 건데 아침식사도 못하시고 이게 뭐냔 말입니까.”
“저 어의님 그렇게 화내시는 거 처음 봤어요.”
“규리하공,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어의님, 화내시니까 꼭 탈해 같은 얼굴이 되었어요!”
이렇게 말이에요! 두 손으로 눈꼬리를 잡아 올리며 인상을 팍 쓰는 정우의 모습에 맥코이는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제 얼굴이 언제 그렇게 되었습니까? 진짜였어요! 물론 도깨비들 중에서 제일 잘생긴 도깨비라고 해드릴게요. 방글방글 웃으며 정우가 두 손을 다시 얌전히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맥코이는 정우를 바라보느라 멈췄던 손을 움직여 엉킨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빗어주었다.
참으로 다정한 분이다. 정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거울 속의 맥코이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맥코이가 눈을 살짝 들어 정우를 바라봤다. 정우가 싱긋 웃으며 비녀를 집어 들어 흔들었다. 얼마 전 탈해에게서 배워 맥코이가 만들어준 비녀였다.
“원래 하시던걸 하는게 어떻습니까?”
“이게 제가 하던 거예요.”
“…규리하공.”
“어의님이 만들어주신 이후로 쭉 해오던 비녀인걸요?”
못 당하겠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맥코이의 말에 정우가 까르르 웃었다. 투박하게 깎였고, 장식도 없고, 무슨 모양인지 짐작도 안 되는 비녀였지만(맥코이는 그것이 하이포라고 말해줬다) 정우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맥코이와 항상 함께 있는 느낌이어서.
이제는 꽤 능숙하게 머리를 틀어 올려 비녀를 이리저리 움직여 고정시켜주었다. 다 되었습니다, 규리하공.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정우가 의자를 밀어내며 일어섰다. 화장대에서 나와 빙그르 돌며 맥코이를 올려다보는 정우가 장난기어린 동작으로 인사를 했다. 맥코이도 작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자, 그럼 가실까요?”
“제가 모시죠, 규리하공.”
맑은 웃음을 터뜨리며 정우가 맥코이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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