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안쪽의 장미 정원으로는 들어가면 안 된단다. 길을 잃고 나올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엄마의 일을 도울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 소년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절대로 영주님의 장미 정원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얼마나 자주 들었냐면 처음에 들었을 때에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두 번째에는 그보다 풀어진 얼굴로 알았다고 대답했으며, 소년이 16살이 되던 해에는 심드렁하게 한 귀로 흘려도 될 정도였다. 그리고 사실, 동화 속 미로처럼 꾸며진 커다란 정원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장미 정원은 소년의 관심을 잡아 끌만한 매력이 없었다. 오히려 화려하게 장식된 미로 정원의 입구에서 간간히 티타임을 가지던 영주의 딸에게 더욱 관심이 많았다.
소년은 정원 주변에 흩어진 나뭇가지들과 꽃잎들을 정리하며 힐끗힐끗 영주의 딸을 훔쳐보았다. 햇살을 가려주는 파라솔 아래에서 영주의 딸은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돼, 렉시!" 영주의 딸이 아끼는 애완견 렉시는 순식간에 정원의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소년과 소녀의 시선이 얽혔다. 소년은 망설임 없이 정원으로 달려 들어갔다. 정원의 구조는 익숙했지만 강아지가 어디로 갔는지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렉시! 달리던 것을 멈춘 소년은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며 정원의 곳곳을 살폈다. 그러나 강아지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 참. 망할 놈의 강아지. 어디로 간 거야? 생각하던 소년은 문득 자신이 찾아보지 않았던 곳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후각으로. 코끝을 찌르는 강한 장미향. 영주의 미로 정원에 장미가 있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엄마가 신신당부하던 장미 정원. 소년은 살짝 고개를 드는 망설임을 한 숨을 쉬며 내리 눌렀다. 이왕 온 거, 애완견이 있는지 찾아보기나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년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곤 천천히 장미정원의 입구로 다가갔다. 그러나 고풍스러운 무늬가 새겨진 정원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어떡한다. 녹이 슬어버린 자물쇠를 바라보며 소년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주면을 휘휘 살핀 뒤 장미 넝쿨로 휘감긴 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걸었다. 멍! 하는 소리는 갑작스레 들려왔다. 소년은 걸음을 멈춘 채 귀를 기울였다. 멍멍!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소년은 천천히 걸으며 자신이 들어갈 만한, 혹은 뛰어 넘을만한 곳이 있을지 살폈다. 조금 더 벽을 따라 걷자 장미 넝쿨이 뻥 뚫려있는 구멍을 찾았다. 자신의 얼굴 정도는 충분히 들이밀 수 있을만한 크기였기에 소년은 그 구멍에 가까이 다가갔다.
장미 정원을 누군가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영주님의 정원을 돌보는 소년의 부모님은 영토 내에서 가장 솜씨가 좋은 정원사들이었다. 그런 두 분도 손대지 않던 곳이 바로 이 곳 장미 정원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거의 버려진 곳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장미 정원은 영주의 커다란 정원 내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성과 애정을 쏟아 가꾼 느낌을 주었다. 색색의 장미들이 아름답게 얽힌 세계의 중심에는 오두막처럼 보이는 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나무 아래에-
"그래, 착하지. 우리 렉시."
렉시는 옆으로 누워 헥헥 거렸다. 강아지의 호흡에 맞춰 느리게 손이 움직였다. 영주의 딸보다 훨씬 더 애정 어린 손길이었다. 나뭇가지의 틈새 사이로 뻗은 햇살이 닿은 머리칼은 금가루가 날리듯 반짝거렸다. 그리고 바람이 불자 아이는 렉시를 쓰다듬지 않는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렇게 고개를 든 아이와 소년의 눈이 마주쳤다. 놀라서 커다랗게 떠지는 눈은 까만색이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이내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아이는 렉시를 쓰다듬다 말고 벌떡 일어나 소년에게로 달려왔다. 도망가야하나 하고 소년이 망설이던 사이 장미 넝쿨의 구멍으로 아이가 도착했다.
"안녕?"
아이가 가까이 오자 꽃향기가 훨씬 진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아이는 신비스럽게 아름다웠다.
"어…혹시 말 못해?"
"아…아냐."
"다행이네. 나 정말 오랜만에 대화를 해보는 거라서.“
오랜만이라니. 소년의 얼굴 위로 의문이 떠오르자 아이는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아냐, 아무것도. 하고 얼버무린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소년은 입을 열었다.
"괜찮아. 난 그저…렉시만 데리고 가면 돼."
"렉시를 찾으러 왔구나.“
여상스러운 말투와는 다르게 얼굴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소년은 그게 무척 안타까워서 재빨리 말했다. 렉시만 데려다주고 다시 올게. 바닥을 향하고 있던 시선이 다시 소년을 향했다. 다시 온다고? 아이가 확인하듯 묻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다시 올게. 약속해."
"…응. 알겠어.“
아이의 얼굴 위로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그 요정 같은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렉시를 넘겨받을 때 언뜻 스친 손가락들이 따뜻해서 또 안심이 되었다. 요정의 손을 잡아본 적은 없지만 인간처럼 따뜻하진 않을 것이기에.
"금방 올게. 어…그러니까…."
“뉴트.”
“어?”
“내 이름. 뉴트야.”
"…응, 금방 다시 올게, 뉴트."
렉시를 품에 안고 일어나 달리려던 소년은 아, 하며 다시 구멍 안을 바라봤다. 자신을 뉴트라고 소개한 아이는 여전히 구멍 반대편에서 자신을 바라봤다. 그 안으로 손을 넣어 뉴트의 오른쪽 손등을 꼭 쥐었다.
"나는 민호야."
"민호…."
"응. 이따 봐, 뉴트. 꼭 다시 올게."
제 이름을 여러 번 되풀이하는 그 입술에서 시선을 떼기 힘들었다. 손 안 가득 잡히는 따뜻함을 놓기 싫었다. 그러나 가야했다. 그래야 얼른 다시 올 수 있다. 아이의 까만 눈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 소년은 그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원을 나가기 위해 달렸다. 장미 정원이 점점 멀어졌지만 그 향기는 전혀 옅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