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시저의 기일을 맞이하여(?)
작업곡은 지브리 콘서트 모음곡
전에는 영상 직접 뜨게 넣는 기능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졌나?ㅠㅠ 불편...ㅠㅠㅠㅠㅠㅠ흑흑....
플러그인으로 첨부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멍청
1.
반짝 눈이 떠졌지만 몰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한 홀리의 눈이 다시 스르륵 감겼다. 그리고 몇 분 후, 그녀는 앗! 하며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출장을 가는 아빠를 배웅하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또 늦잠을 자버렸어. 제 작은 머리를 콩콩 두드리며 부엌까지 단숨에 달려온 홀리는 얼음이 잔뜩 들어있는 잔에 콜라를 붓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엄마! 아빠는?”
“홀리, 아침 인사.”
“좋은 아침이에요! 그래서, 그래서 아빠는?”
아빠 설마 벌써 간 거야? 발을 동동 구르며 울상을 짓는 딸의 뺨에 모닝키스를 해준 수지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햇살처럼 환해지는 홀리의 얼굴에 그녀는 콜라가 든 컵을 쟁반에 올려 딸에게 부탁하며 죠셉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쏟지 않게 조심하고.”
“응, 알았어요!”
수지가 건네준 쟁반을 조심히 잡고 홀리는 천천히 걸어갔다. 녹아내리는 얼음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그 때마다 홀리는 자신의 조심성 없는 걸음 탓인 것 같아 잠시 멈췄다가 걸었다.
아빠가 있는 유리정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거실의 커다란 유리문을 열어야 했다. 유리문과 제가 들고 있는 쟁반을 번갈아본 홀리는 다시 몸을 돌려 테이블 위에 쟁반을 내려놓고서 돌아와 유리문을 열었다. 훅, 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 그녀는 테이블 위의 쟁반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섰다.
여름이었지만 아직 데워지지 않은 아침 바람은 상쾌했다. 유리정원까지 이어진 길 양옆에 만들어진 화단에서 다양한 색상과 품종의 꽃들이 살랑살랑 흔들렸고, 서로의 향이 뒤섞여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그러나 홀리의 신경은 오로지 쟁반 위의 콜라 잔을 엎지 않고 조심히 걸어가는 것에 쏠렸다.
이 유리정원은 아빠가 무척이나 공을 들인 곳이었다. 만들 당시에도 무척이나 까다롭게 굴어서 작업하던 분들이 고생하던 모습들을 그녀도 기억했다. 언제나 방글방글 웃는 얼굴의 아빠였는데 유리정원을 만들 때의 아빠는 너무나도 생소하고 낯설어서 계속 엄마의 곁에만 붙어 있었던 것도.
유리정원의 문을 열자마자 해바라기향이 코를 스쳤다. 육각형 형태로 제작된 유리정원의 입구에서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마치 산책로처럼 구불구불했고, 그 양쪽으로 크고 작은 해바라기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어째서 해바라기들밖에 없을까. 다른 꽃들도 많으면 해바라기도 심심하지 않을 텐데. 제 머리 위로 쏟아질 듯 피어있는 해바라기들을 바라보며 홀리는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아빠에게 물어봐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길이 끝나는 지점에 서서 해바라기를 향해 싱긋 웃은 뒤 홀리는 고개만 살짝 내밀어 안쪽을 살폈다.
유리정원의 안쪽은 입구와는 달리 벤치와 테이블이 마련되어 앉아 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벤치에 앉으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과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는 해바라기를 감상할 수 있다. 아빠가 유리정원을 찾을 때면 홀리 역시도 그 옆에 앉거나 아니면 아빠의 무릎에 앉아 함께 해바라기를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아빠는 언제나처럼 벤치에 앉아 있지 않고 한 해바라기 앞에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꺾일 듯 고개를 푹 숙인 해바라기 꽃을 양 손으로 소중하게 받쳐 들고 선 아빠를 부르기 위해 입을 열던 홀리는 그대로 입을 다물고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해바라기 꽃잎에 입을 맞추고 고개를 든 아빠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슬퍼보였다.
2.
아빠가 출장을 떠난 지 이틀이 지났다. 그것은 홀리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뒤척인 날짜이기도 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이틀 전 아침의 아빠는 마치 슬픔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위태로운 모습. 그리고 홀리를 더욱 고민하게 만든 것은 그런 슬픔 따위 처음부터 없었단 것처럼 활짝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반겨준 아빠의 모습이었다. 미처 다 닦아내지 못한 눈물 때문에 짙어진 눈동자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유리정원에서의 아빠는 평소와는 약간 다르긴 했다. 조금 더 차분해지고, 생각에 잠긴다고 해야 할까.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밝게 자신과 놀아주던 아빠의 목소리 역시 유리정원 안에서는 잔잔하게 변했다.
무엇이 아빠를 그렇게 바꿔버리는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해바라기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꽃을 보고 연상할 수 있는 슬픔.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홀리의 생각은 한 가지 결론으로 이어졌다.
“…못 다 이룬 사랑…인가?”
마음을 세게 짓누르는 무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릴 적, 엄마를 조르고 졸라 들었던 부모님의 사랑 이야기에는 분명 아빠도 엄마도 서로가 첫사랑이었다. 그랬기에 홀리는 그 외의 가능성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했다.
똑똑, 하고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무릎을 껴안고 웅크린 채로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홀리는 첫 노크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똑똑, 다시 한 번 더 노크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홀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아직 안자고 있었구나.”
“아, 엄마!”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홀리의 엄마, 수지였다. 그녀는 편안한 잠옷 차림으로, 베개까지 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홀리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제 옆자리를 비워주었다.
“오랜만에 같이 자는 것 같아.”
“응, 정말요.”
“그런데 왜 아직 안자고 있었니?”
“…그냥 잠이 오질 않아서요.”
그러면서 홀리는 수지의 품을 파고들었다. 어머, 여전히 애기 같네, 우리 홀리. 맑은 웃음을 터뜨린 그녀는 딸을 꽉 안아주곤 이마에 키스해주었다.
“그렇지만 오늘이 아니라 어제도 잠을 못잔 것 같던데.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니?”
엄마한테도 말하기 힘든, 그런 고민 말이야. 홀리는 그제야 엄마가 왜 자신의 방을 찾아온 것인지 깨달았다.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노력했는데 역시 엄마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엄마의 품에서 눈을 굴리며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결심했는지 고개를 들었다.
“엄마, 나 궁금한 게 있어요.”
“응? 뭔데?”
“…그, 아빠한테…아빠한테요….”
“아빠가 왜? 아빠한테 혼이라도 난 거야?”
이상하네.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미간을 모으며 생각에 잠기려는 엄마의 모습에 홀리는 벌떡 일어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니에요, 엄마.”
“음? 그게 아니면?”
“해바라기….”
“해바라기?”
“응. 아빠한테 해바라기 꽃…많이 소중해요?”
일어나 앉은 딸을 올려다보기 위해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던 수지가 눈을 크게 떴다. 엄마의 표정변화에 홀리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수면 램프의 은은한 불빛을 받은 엄마의 얼굴이 이틀 전, 해바라기 꽃을 바라보던 아빠의 얼굴과도 너무나도 닮아 보여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눈물이 난 것인지도 몰랐다. 이런, 홀리. 엄마가 몸을 일으키는 모양인지 침대가 조금 출렁였다. 그리고 따뜻한 손이 뺨을 문질러주었다. “아가. 울지 마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부드러운 동작으로 딸을 품에 당겨 안은 그녀는 잘게 떨리는 어린 등을 토닥여주며 나직한 목소리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제까지 딸에게 한 번도 들려준 적 없었던, 오래된 이야기를.
3.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된 모양이다. 몇 번의 심호흡 끝에 홀리는 유리정원의 문을 열었다. 아빠 없이 혼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홀리는 제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홀리는 아빠가 서 있던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활짝 핀 다른 해바라기들과는 달리,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작은 해바라기 앞이었다. 잠시 동안 홀리는 그 해바라기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해바라기는 시들어서 고개가 꺾인 것이 아니라 꽃대가 눌려 꺾인 것임을 말이다.
아마도 꽃봉오리의 무게를 줄기가 이겨내질 못했던 것 같았다. 홀리는 그 부분을 한참 들여다보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해바라기와 잘 어울리는 색일 것이라 생각하고 가지고 온 것인데 다행히도 잘 어울렸다. 안심했다는 듯 한숨 섞인 웃음을 지은 홀리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예요, 아저씨.”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손을 뒤로 돌려 잡았다. 연녹색의 비단 리본이 작은 해바라기의 꽃대를 감싼 뒤 옆에 있는 좀 더 단단한 해바라기의 줄기에 묶여 있었다. 그 덕에 푹 숙여졌던 작은 해바라기의 꽃봉오리가 다시 하늘을 향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까지 아빠의 친구는 스모키 아저씨만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왜 아빠는 이렇게나 멋진 분이 친구였다는 것을 내게 말해주지 않았을까요? 조금 섭섭했어요. 미리 알았다면 나도 아저씨에게 더 고마움을 표시해줄 수 있었을 텐데요. 아빠를 구해줘서, 고맙다고 말이에요. 그래도 말이죠, 아무리 아저씨가 해바라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바라기만 잔뜩 있는 건 좀 별로이지 않아요? 아빠가 좀 이상한데서 센스가 없는 경우가 있어서요. 아저씨도 잘 알죠?”
주변을 죽 둘러보며 홀리가 웃었다. 아빠가 오시면, 다른 꽃들도 심어달라고 할게요. 아저씨가 심심해하지 않도록. 다시 자신이 리본으로 묶어둔 작은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인 그녀는 물러났던 만큼 다시 앞으로 다가갔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패밀리 트리를 만든다고 엄마가 말해줬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 몫의 나뭇가지를 그려준다고요. 아직 나한테 보여주진 않았지만 내 이름이 들어간 나뭇가지를 벌써 그려놨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 생각했어요. 나는 아빠와 엄마의 아이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아저씨에게서 받은 작은 새싹도 있다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저씨의 나무는 계속 자랄 거예요. 내가 아저씨의 나뭇가지가 될 테니까요.”
내 나뭇가지 옆에 아저씨의 나뭇가지를 그려놓을게요. 아저씨도 소중한 우리의 가족이니까요. 그리고 고개를 숙여 노란 꽃잎에 입을 맞추었다. 그 때, 유리정원 밖에서 저를 찾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아저씨, 다음에 또 놀러 올게요. 리본이 잘 묶여 있는지 확인한 홀리가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 바람에 해바라기 꽃들과 리본이 나풀거렸다.
마치, 다음에 또 오라는 듯, 인사하는 것처럼.
4.
그날 밤, 홀리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엄마가 입었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새파란 드레스를 입고 누군가와 춤을 추고 있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섭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고, 그리운 기분이 밀려들었다.
연주가 끝나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인사를 한 뒤에야 홀리는 깨달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상대가 한쪽 무릎을 꿇자 연녹색의 반다나가 팔랑거렸다. 그리고 홀리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끌어 그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홀리 역시 고개를 숙여 연보랏빛 반점이 있는 그의 뺨 위에 키스해주었다.
5.
해가 저물어가는 들판을 걷다가 멈춰 선 홀리는 문득 어릴 적 꿨던 꿈을 떠올렸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꽤 로맨틱한 꿈이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수줍게 웃던 그녀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멈춰 섰다.
…아저씨?
손끝에서 비눗방울을 만들어 내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홀리를 바라봤다. 마중 나와 주신 건가요? 홀리의 질문에 남자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손을 몇 번 털어 남은 비눗방울을 날려 보낸 그가 몸을 돌려 홀리를 향해 걸어왔다. 무어라 말을 하듯 입술이 움직였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홀리는 내밀어진 남자의 팔을 잡고는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6.
아저씨가 함께 있어준대요. 그러니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아빠.
* 사실 죠죠 조각글을 제일 처음 쓰고자 한 것은 이 것이었다. 근데 잘 안 나와서 계속 버려뒀다가 마침 시저 기일도 오고 해서 (어설프게나마) 마무리지어봄
** 스탠드의 발현으로 앓아 누운 홀리의 곁에 시저가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언제나 생각한다. 거기서부터 출발한 글.
*** 이탈리아 인들의 패닐리 트리 이야기는, 인간극장에서 한국분이랑 결혼한 이탈리아 건축가 이야기가 생각나서 넣어봄. 정확한 명칭은 생각이 안 나지만 암튼 족보를 나무처럼 만들어서 계속 가지를 늘려나가더라눈... 명칭이 있었던가 잘 모르겠다 암튼 뭐 그런 족보 이야기....
**** 작업곡은 홀리가 어린 아이여서 그랬는지 25주년 지브리 콘서트 음원 계속 들으면서 썼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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