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던지면 다시 돌아온다는 그 유명한 분수 가는 둘이 보고싶었다구 한다.
나름 시저 기일 맞이 두 번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입어 확인해보고 그 단어로 들어오는걸로 보여서 급히 수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본 글에 있잖아.... 수정할 이유 1도 없는....ㅠㅠㅠㅠㅠㅠ
작업곡은 피아노포엠의 달 그림자의 추억
1.
네가 좋아, 죠죠.
담백하게 던져진 고백의 파문은 컸다. 피곤함과 함께 몰려드는 잠을 다 쫓아내버릴 정도로.
-
여느 때처럼 진행된 고된 훈련이 막 끝나자마자 죠셉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쓰러지듯 누웠다. 무릎 위에 손을 얹고 등을 둥글게 만 채로 호흡을 가다듬던 시저는 그런 죠셉을 못 말린다는 듯 바라보다가 그 옆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대체 어떻게 된 훈련이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되냐."
"그러면 그게 훈련이 된다고 생각하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놈의 마스크도 적응이 안 돼. 언제까지 하고 있어야 하는 거야?! 거친 호흡 사이로 느리게 흘러나오는 투정 같은 말에 시저는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웃었다. 그래도 꽤 빨리 적응했잖아? 그건 대단한 거라고. 아 몰라, 몰라. 답답하다고! 죠셉은 마스크를 붙잡고 버둥댔지만 시저는 시선을 하늘로 향한 채로 숨을 고를 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멈추지 않는 죠셉의 투정에 손을 들어 볼록하니 튀어 나온 마스크의 앞부분을 마치 입을 막듯이 꾹 눌렀다. 악! 아프다고! 죠셉의 몸이 더욱 크게 흔들렸다.
"체력이 아직 남는 모양인데? 훈련 더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선생님께 말씀드려 볼까나. 마치 혼잣말을 하듯 나직이 흘러나온 시저의 말에 죠셉의 움직임이 딱 멎었다. 눈을 가늘게 뜨곤 원망으로 뾰족해진 시선을 마구 던져대는 그를 무시하며 시저는 마스크를 누른 손을 치워주었다.
불어오는 바람은 낮과 비교하면 제법 쌀쌀했지만 후끈하게 달아오른 몸의 열기를 식히기엔 적당했다. 땀에 젖은 반다나를 풀어내어 손으로 돌돌 감은 시저의 얼굴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슨하게 풀어졌다. 그러나 죠죠, 하고 죠셉을 부르는 시저의 목소리만큼은 평소와 같았다.
그랬기에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던 죠셉은 시저의 변화를 빠르게 눈치 채지 못했고, 그의 말을 이해하는데 꽤 머리를 굴려야했다.
"네가 좋아, 죠죠."
명확한 의미를 담은 말이 마치 오늘 저녁은 무엇일까? 하는 일상적인 질문처럼 들려왔다. 시저의 목소리가 자신의 귓바퀴를 타고 그 속으로 들어와 뜻을 파악하기까지의 그 찰나의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정지될 것처럼 아주 느리게 흘렀다. 거칠었던 숨은 어느새 평소와 같은 호흡으로 돌아와 있었다.
"네가 좋아."
대답을 듣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은 시저의 목소리를 죠셉은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다른 때였으면 질색을 하며 빈정거렸겠지만 오늘의 분위기는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빈정거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쿵쿵, 겨우 진장되었다 싶은 심장이 다시 세게 뛰었다.
구름 한 조각 찾아볼 수 없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던 죠셉의 시선이 제 옆에 앉아 있는 시저를 향해 움직였다. 반다나를 감은 손을 반대쪽 손으로 감싸 쥔 그 역시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격렬한 훈련을 끝낸 사람답지 않게 편안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어느 샌가 평소와 같은 호흡으로 돌아왔지만 죠셉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날것 그대로 느껴지는 진실의 무게도 무게였지만 죠셉이 숨을 쉴 수 없었던 이유는 그 너머에 있는 '의도' 탓이었다. 기둥 사내들과의 결투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훈련이 막바지에 이르는 이 시점에 갑작스레 튀어나온 고백의 이면에 있는 의도를 죠셉이 모를 리 없었다.
시저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죠셉의 시선이 다시 하늘을 향했다. 보석처럼 촘촘히 박혀 있는 별들을 눈에 담던 그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까지도 시저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가자. 배고파."
"……그래."
시저의 대답을 듣자마자 죠셉은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시저가 일어나 따라 걸어오는 소리를 들으며 죠셉은 이를 악물었다. 왜 하필 지금이지? 긴장인지 기대감인지 모를 두근거림이 심장에서부터 온 몸으로 퍼졌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야, 시저. 지금은…. 바닥에 누워있느라 엉망이 된 스카프를 풀어내며 그렇게 생각했다.
2.
"네가 진짜 사태의 심각함을 알고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죠죠."
"헤헹, 당연히 알고말고."
그 위험한 반지를 몸에 걸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니까 말이야. 창밖을 바라보는 죠셉이 개구진 미소를 지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시저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 놈이 한가롭게 관광을 가자고 하냐고! 결국 참지 못한 그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지금이니까 가는 거야."
"뭐라고?!"
"지금이니까. 지금이 딱 가기 좋은 시기야."
그러나 죠셉은 턱을 괴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귀를 파는 시늉을 하며 여상스럽게 대꾸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여유로움에 시저는 졌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차창 밖을 바라봤다.
그래서 시저는 알지 못했다. 밖을 바라보는 줄 알았던 죠셉의 시선이 어느새 저를 향하고 있음을 말이다.
-
로마는 여전히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그러다보니 죠셉과 시저는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바짝 붙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딜 가는 건데? 맞은편에서 오는 행인을 피해 몸을 틀며 시저가 물었다. 그런 시저가 어깨를 붙잡아준 죠셉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다 왔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죠셉을 올려다보던 시저는 그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휙, 돌풍과도 같은 움직임으로 죠셉을 쳐다보며 인상을 썼다.
"…네 놈."
고작 저걸 보자고 아까운 훈련시간을 내팽개치고 온 거냐고! 그러나 시저의 외침은 죠셉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에 안타까이 흩어졌다. 놀란 듯 모여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은 시저는 몸을 돌려 저만치 멀어진 죠셉을 뒤쫓았다.
"야, 죠죠! 너 정말…!"
"시저."
죠셉이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았다. 무게를 잡아도 소용없어! 그렇게 외치며 죠셉의 얼굴 앞으로 제 얼굴을 불쑥 들이민 시저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장난기가 없는 죠셉의 얼굴. 그것은 2주 가까이 함께 훈련을 해온 시저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무표정하진 않았다. 얼굴의 근육이 자연스럽게 풀어져 편안해 보이는 얼굴은 마치 어린아이의 맑은 얼굴과도 닮아 보였다. 있지, 시저. 트레비 분수를 장식하는 화려한 조각상들을 바라본 채로 죠셉이 말했다.
“와무우들과의 일이 모두 끝나면 다함께 여길 오고 싶었어. 그렇잖아? 로마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친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여길 와서 동전을 던진다고 하니까.”
그래서 그 놈들을 물리치고 나면 다 같이 와서 동전을 던질 생각이었어. 미처 제대로 보지 못한 이곳을 구경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려고 말이야. 주머니에서 꺼낸 동전을 만지작거린 죠셉이 고개를 돌렸다. 닮은 듯 다른 녹색의 시선이 얽혔다. 죠셉의 얼굴 위로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의아하다는 듯 커지는 시저의 눈을 똑바로 쳐다며 그는 손에 쥔 동전에 입을 맞추곤 휙 던졌다. 퐁, 하고 동전이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일정이 다 끝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효과가 없는 건 아니겠지? 우리가 강해지긴 했지만 약간의 운도 따라주면 좋을 거 아냐. 그러니까 믿어보자고. 이렇게나 오랫동안 사랑받는 곳이니까 그렇게 야박하진 않을 거야.”
“죠죠….”
“에엑, 그 눈빛은 뭐야? 낯간지럽게…. 아 물론, 불안하거나 불안하다거나 불안해서 여기 온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누가 뭐래?”
짧은 웃음을 터뜨린 시저가 주머니를 뒤적여 동전을 꺼냈다. 손바닥 위에 놓고 한참을 바라보던 그는 눈을 감고 기도하듯 양손을 겹쳐 잡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죠셉은 어쩐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시저는 눈을 떴고, 죠셉이 했던 것보다는 신중한 태도로 동전을 던졌다.
퐁, 맑은 소리를 내며 동전이 분수 안으로 떨어졌다. 고개를 돌린 시저가 죠셉을 쳐다봤다. 시저의 눈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죠셉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럼 이제 돌아가야지.”
“엥? 돌아가다니, 어딜?”
“어디긴 어디야. 에어 사프레나로 돌….”
“에에에! 말도 안 돼! 어떻게 얻어서 나온 건데!”
시저짱, 그러지 말고 우리 저기서 젤라또 사먹고 가자, 응응? 여전히 시선은 시저를 향한 채로 빠르게 말하며 죠셉이 빙글 돌아섰다. 꺄악! 하는 여자의 비명과 어이쿠, 하는 죠셉의 목소리가 뒤섞여 분수 주변을 울렸다. 뒤에 서 있던 여자에게 부딪히지 않기 위해 무리하게 몸을 뒤로 젖힌 죠셉을 시저가 붙잡아주었다.
“미안해요, 시뇨리나. 일행이 결례를 범했군요.”
우아한 동작으로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놀랐던 얼굴이 발갛게 변해가는 것을 보며 죠셉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너도 어서 사과해, 죠죠. 붙잡은 팔을 흔들며 시저가 말했다. 죠셉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건성으로 사과를 건넸다. 그러나 여자는 오로지 시저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시저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죠셉은 어째 마음이 답답해졌다.
“사과했으니 됐지? 어서 가자, 시저!”
“그래, 알았어. 죠죠. 이 영원의 도시 로마에서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요, 아름다운 시뇨리나.”
“아, 얼른 가자아!”
얼굴을 찌푸리며 죠셉이 몸을 휙 돌렸다. 무어라 여자에게 더 말을 거는 시저의 목소리에 흥, 콧방귀를 끼며 큰 보폭으로 걸었다. 그러다 문득, 시저가 붙잡았던 제 팔을 내려다봤다. 뒤를 돌아보자 마지막 인사를 끝냈는지 시저가 여자에게 웃어주던 얼굴 그대로 죠셉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뭐, 또 잡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제 등을 툭 치고 앞서가는 시저의 손끝을 죠셉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3.
그러나 그것이 헛된 바람이었음을…그 때 미리 알았더라면.
4.
분수 주변을 스치는 바람에서 봄의 향기가 묻어났다. 죠셉은 물끄러미 분수의 정 중앙에 선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소원을 반쪽만 들어주는 신이 어디 있냐?”
약 한 달하고 2주 전, 동전에 입을 맞추며 빌었던 소원을 떠올리며 죠셉이 투덜거렸다. 분명 함께 다시 올 수 있도록 지켜봐달라고 했잖아요. 투덜거림의 끝이 눅눅하게 젖어들었다. 그러나 바다의 신은 말이 없었다. 그저 여유로우면서도 위풍당당한 자세로 세상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결국 나는 네게 대답해주지 못했어, 시저. 오히려 너를 화나게 한 채로 떠나보냈지.”
나는, 모든 일이 다 끝나고 여기 다시 돌아와 네게 대답을 들려주고 싶었어. 나 역시도 너를 좋아한다고 말이야. 그러나 나직이 흘러나오는 죠셉의 말을 들어야 할 이는 이제 없었다. 그저, 그와 함께 왔던, 특별한 기억이 있는 곳에 와서 흘려보낼 뿐이었다.
“나는 네가 어쩌면 우리가 패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내뱉은 고백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그게 아닌 것 같았어. 너는 너를 구해주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마지막까지 부르지 못했던 것이 후회로 남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혹시라도 네 마음을 내게 전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남은 내가 더 후회할까봐 말이야. 그래서 내게 말한 거지? 너는 늘 그랬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목숨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지. 내게 그것을 알려주려고 했던 거지? 혹시라도 네가 나 때문에 죽어도 슬퍼하지 말라고 말이야.”
네가 좋아, 죠죠. 리사리사에게서 시저의 과거를 전해들은 죠셉이 가장 먼저 떠올린 목소리였다. 짧고 명료한, 담백한 고백. 그렇지만 시저가 죠셉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진심어린 고백이었다.
“…시저. 나도…나도 네가…좋아. 좋았어.”
아니, 지금도 좋아해. 이렇게 가슴이 아플 정도로 말이야. 남실대는 눈물이 기어코 뺨을 타고 흘렀다. 부옇게 흐려진 시야 너머로 시저의 웃는 얼굴이 그려지는 듯 했다. 죠셉은 오른손을 들어 뺨을 닦은 뒤 조금은 힘겹게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그 동전을 던지진 않았다. 들고 온 꽃다발과 함께 분수의 가장자리에 내려놓을 뿐이었다.
던지지 않아도 그는 돌아올 것이다. 로마로, 베네치아로, 그리고 시저의 고향으로.
그렇기 때문에 던질 필요가 없었다. 죠셉은 꽃잎을 살짝 어루만지고는 숙였던 허리를 폈다.
“…안녕, 시저.”
트레비 분수의 화려하고 장엄한 개선문 너머의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죠셉이 웃었다.
* 죠셉은 뭐랄까, 강하고 씩씩하고 그렇지만 전형적인 외강내유형 캐릭터 같다는 느낌이 있음. 그래서 혹시라도 이기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런 애한테 던져진 시저의 고백이란...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것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죠셉은 스스로의 불안감을 없앨 요량+그래, 못 볼 수도 있다면 지금이라도 가자! 하는 마음에 시저를 끌고 트레비분수로 갔다는 그런 설정인데 잘 안 드러난 것 같아서 이렇게 긴 사족으로... 대신 합니다... 쥬륵...
** 유리정원 이야기 쓰다 막혀서 이걸 썼는데 마찬가지로 막혀서 버려두고 있었다고 한다....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 죠셉, 시쟈... 사... 사... 좋아해... 아주 많이...S2
**** 사실 피아노포엠의 노래 모음곡 들으며 쓴건데 달 그림자의 추억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같이 링크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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