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 쌓이면 수정할 생각이 있다보니 일단 올리고 봅니다. 올리고 나면 수정할 부분도 보이겠지요(대책없음
**** 들으면서 쓴 노래는 아래 링크. 계절감이 맞진 않지만 좋은 노래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것은 건널목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때였다. 평소의 우시지마였다면 건널목 신호를 보고 건너야 하는 루트를 선택하지 않았겠지만 그날만큼은 어째선지 갈림길에서 가지 않던 왼쪽 길로 들어섰다. 달리면서도 우시지마는 스스로를 납득시킬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고, 그러던 중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에서 멈춰 서게 되었다.
가빴던 숨은 몇 번의 심호흡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차도의 신호가 녹색에서 황색으로 바뀌는 것에 우시지마의 시선이 건널목 신호등을 향했다. 녹색등으로 바뀌면 곧바로 달려가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통통.
건널목의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지만 우시지마의 몸은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통통.
익숙히 알고 있는 소리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 우시지마는 달려 나가기 위해 잡았던 자세를 풀고 뒤를 돌아봤다. 그제야 그는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던 고등학교의 교문 앞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코트에서 마주쳤던 적은 없었다. 건널목과 가까운 교문, 그리고 그 교문 가까이 있는 체육관.
통통. 체육관의 열린 틈으로 공이 바닥에 부딪혔다 튀어 오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시지마는 발길을 돌려 체육관을 향해 걸었다. 일탈 아닌 일탈을 뒷받침할만한 이유를 찾으면서.
*
탁탁, 배구화가 바닥을 박차는 소리와 팡, 배구공과 손바닥이 만났다 멀어지는 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울렸다. 우시지마는 입구 쪽에 비스듬히 서서 연습경기를 지켜봤다. 연습경기는 2세트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듯했다. 코트와 점수판을 한 번씩 본 우시지마는 20점대에 먼저 안착한 네코마라는 것을 깨달았다. 네코마. 어쩐지 낯설지가 않은 이름이었다. 눈은 다시 코트 위를 향했으나 네코마, 라고 속으로 되뇌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 탓에 우시지마는 경기를 보고 있지 않았다.
“…?”
우시지마의 시선이 네코마의 진영 쪽으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시선보다도 빠른 움직임으로 네코마의 1번이 공을 살려냈다. 텅 비어있던 왼쪽 뒤편을 작정하고 노린 공격이었으나 공은 코트의 바닥에 닿지 못하고 다시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재빠른 판단과 그에 뒤따르는 반사 신경이 없고서는 나올 수 없는 수비였다. 게다가 무척이나 안정적인 자세였다. “나이스 리시브, 쿠로오 선배!” 우렁찬 목소리에 우시지마는 그제야 과거의 어느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연습시합을 위해 왔던 대학 배구부에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리시브가 월등히 좋았던 미들 블로커가 자신의 출신 고교는 다들 리시브가 강하며, 자신은 그 중에서도 좋은 축에 속하는 게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었었다. 어느 학교를 나오셨어요? 하고 누군가가 물었고, 그는 도쿄의 네코마 고교라고 답했다. 현재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리시브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하락세인 지금도 리시브만큼은 다른 학교에 뒤지지 않는다고 덧붙이는 말과 함께.
그 뒤 도쿄에서 있었던 청소년 국가대표 합숙 훈련 때에도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네코마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 중심에 3학년들보다도 리시브가 뛰어난 2학년이 있다, 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너라 해도 네코마의 그 끈질긴 리시브를 보면 혀를 내두를걸. 땀을 닦으며 말하는 상대에게 그런가, 하고 짧게 대답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에 맞는다면, 그 때 상대가 흘리듯 말한 2학년의 이름이 아마도 저런 이름이었던 것 같았다.
삐익, 시합이 끝났음을 알리는 휘슬소리가 우시지마를 상념에서 깨어나게 했다. 손바닥들이 부딪히는 소리와 해맑은 웃음소리가 잠시 이어지다 뚝 끊겼다. 우시지마 아냐? 맞는 것 같아. 시라토리자와의…? 우시지마가 여길 왜? 소곤댄다기엔 꽤 큰 목소리였으나 딱히 대답해줄 생각도 없었기에 우시지마는 몸을 돌려 나가고자 했다. “여, 이거 영광인걸!” 나긋한 목소리가 저를 붙잡지 않았다면.
“전국구 에이스가 경기를 다 관람해주시고…보통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생각해, 우시와카 군?”
“우시지마 와카토시다.”
“뭐, 아무튼. 그래서 에이스의 관람 평을 좀 듣고 싶은데 말이죠.”
경기는 어땠나요, 우시지마 군? 얼굴을 닦아낸 스포츠 타월을 어깨에 걸친 소년, 네코마의 1번이 문틀을 짚으며 우시지마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체육관 정문으로 통하는 계단의 중간 쯤 서 있었던 탓에 우시지마는 그 소년을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되었다. 약간의 기대와 흥미, 그리고 장난기가 뒤섞인 금색의 눈동자를 올곧게 쳐다보며 우시지마가 말했다.
“전체적으로 리시브는 훌륭하다. 하지만 아직 콜사인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고 몇몇은 리시브가 불안정 하더군. 신체적 조건은 좋다만 기본기가 현저히 부족한 점도 보이고. 아직 1학년들인가?”
“아아, 그렇지.”
“그렇군.”
들었지, 리에프? 돌아가면 더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소년이 뒤를 돌아보며 외치자 “너무해요, 선배!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요!” 울먹이는 목소리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씩씩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괜찮았다는 거지?”
“좋을 대로 생각해. 하지만.”
“하지만?”
가늘고 길쭉하게 빠진 눈매가 동그랗게 변했다. 깜빡이는 눈꺼풀에 금색의 눈동자가 가려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인상이 갑자기 변한 듯했다. 경계를 늦추지 않던 고양이가 삽시간에 얌전해지는 것과 같은 변화. 어쩐지 우시지마는 가슴께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어렸을 적, 배구공을 처음으로 만졌을 때의 기분처럼.
“…아니다.”
“헤에, 뭐였을까. 전체적으로 괜찮았지만 그래도 시라토리자와의 상대는 못 된다는 건가?”
이번에는 우시지마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눈치가 빠른 소년은 그것을 알아차렸을 테지만 굳이 짚어내진 않았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의아하다는 듯 우시지마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기울었다.
“뭐, 데이터만 보면 그렇지.”
“…….”
“그래도 말이야. 그건 붙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야.”
천재적인 선수가 없어도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소년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우시지마의 시선도 함께 움직였다.
“우리들은 강하게 연결되어 있거든. 여섯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것. 그게 우리의 강점이지.”
“…그런가?”
“그래. 천재가 여섯 명이 있다고 해서 다 어우러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계속 이어주는 것이다. 우리 감독님의 철학이야. 씩 웃으며 소년이 양 손의 검지를 나란히 세워보였다. 그 때 뒤에서 소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솔직한 관람 평 고마워. 손을 흔들며 인사한 소년이 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잠깐, 무의식적으로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갔다. 응? 하며 소년은 다시 제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름.”
“뭐?”
“네 이름, 뭐지?”
아, 하며 멍하니 벌어진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허리까지 숙여서 웃던 소년이 다시 상체를 세웠다. 여전히 웃음을 매달고 있는 입매에서 우시지마는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쿠로오 테츠로.” 그리고 그 입의 움직임에 맞춰 우시지마도 소년의 이름을 따라했다.
“만나서 반가웠어.”
소년, 쿠로오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적당히 그을린 손은 배구선수답게 크고 길쭉했다. 그 손을 마주잡고 위 아래로 살짝 흔들었다. 제 심장도 그 움직임에 맞춰 크게 뛰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