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뛰어난 어린 크리스와 그런 크리스의 신 미유키가 보고팠다고 한다.
그리고 미유키에게 높임말 쓰는 크리스도...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 미유크리 사랑해...
참고를 한 것은 소설 음양사, 미미여사의 에도시대 시리즈들.
마차를 타고 산을 오르는 일은 생각만큼 편안하지 않았다.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길을 지날 때마다 바퀴가 튀어 올라 마차가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차를 탄 아이는 무어라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물에 푹 젖은 목소리로 말을 거는 여인을 아이가 위로해주었다. 맨 앞에서 소의 고삐를 틀어쥔 행수의 눈에도 눈물이 잔뜩 고였다.
정상까지 이어질 것 같던 길이 갑자기 끊어졌다. 멈춰 서서 주변을 살피던 행수는 여기가 제 주인이 말한 장소임을 알았다. 뒤를 돌아보는 행수와 눈이 마주친 여인은 이제 목 놓아 울 기세였다. 그렇게 울지 마세요, 유모. 그렇게 우시면 고운 얼굴도 상합니다. 마차의 문이 열리며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입술을 꾹 깨문 그녀는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아낸 후, 아이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유모의 손을 잡고 몇 걸음을 걷다가 우뚝 멈춰 섰다.
“…이제 여러분들은 돌아가서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유모는 기어이 오열했다. 행수 역시도 눈물로 젖은 얼굴을 벅벅 닦아낸 후 엉엉 울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아이와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행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한 아이는 고운 비단으로 감싸인 것을 그에게 내밀었다. “올 때는 제가 있어서 괜찮았지만 돌아가실 때는 아니니까요. 대신 이것이 지켜줄 것입니다.” 행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아이가 내민 부적을 받아들었다.
마차는 올 때와 비슷한 속도로 천천히 사라졌다. 유모의 울음소리도,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도, 마차의 바퀴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산의 소리만이 남았을 즈음, 아이는 자신의 오른쪽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햇빛 하나 닿지 못할 정도로 나무가 뻑뻑하게 자라난 곳이었다. 잠시 그 쪽을 바라보던 발을 더듬어 몸을 다시 틀었다. 제가 바라보던 곳을 등 뒤에 두고 아이는 걸었다. 사박사박, 발밑에서 흙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지만 아이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제 앞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선 나무는 없다는 태도로 걸었다.
「어이쿠.」
아이가 나무와 충돌하기 직전, 재빠르게 뻗어 나온 무언가가 아이의 몸을 단단히 붙잡았다. 큰일 날 뻔 했잖아. 책망하는 목소리가 산을 가득 울렸다. “지켜보고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렇게 걸어가면 쓰나. 제 몸을 나무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내려둔 이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앞으로는 잘 보고…. 아이의 앞에 선 이가 말끝을 흐렸다.
「너는….」
“붙잡아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너, 눈이….」
“영력에는 지장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타키가와 유우가 인사드립니다. 무릎을 꿇은 뒤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하려는 아이를 급하게 붙잡았다. 놀란 듯 고개를 든 아이가 눈을 깜빡였다. 탁하게 흐려진 흑갈색의 눈동자가 눈꺼풀 너머로 사라졌다가 드러났다.
아, 그렇구나. 하는 탄식이 흘렀다.
아이는 장님이었다.
∴
유례가 없는 가뭄이 열흘 넘게 이어졌다. 내일은 비가 오겠지, 곧 비가 오겠지, 왕께서 비가 오기를 간청하신다 하였으니 올 것이야, 하였으나 하늘은 요지부동이었다.
혹은 닿지 않는 것일 수도.
하늘을 간절히 올려다보던 백성들의 시선은 곧 원망으로 바뀌어 왕을 향하기 시작했다. 등극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에 위기를 맞이한 궁은 크게 동요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기반이 단단해지기 전에 큰일이 날 수 있다고 여긴 왕은 주술사들을 불러 모아 길일을 잡고 기우제를 지냈다. 그러나 큰 소용이 없었다.
이제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하늘도 그것을 바라는 것일 지도요.
내밀어진 점괘를 확인한 왕은 기뻐했다. 드디어 비가 오겠구나, 하고.
그것이 영력이 높은 아이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쟁점은 제물이 될 아이를 어떻게 뽑느냐는 것이었다. 나라에 영력이 높은 아이들은 몇 되지 않았고, 대부분은 이름 높은 주술사 가문의 아이들이었다. 그런 가문에서 제 아이를 쉬이 내놓을 리 없었다. 가뭄만큼이나 입씨름도 길어질 것처럼 보였다.
아니, 사실은 누구를 제물로 할지 정해져 있었다. 다만, 말을 꺼낼 수가 없을 뿐이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래서 당사자가 나섰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자리에 앉아 입을 연 아이의 얼굴은 평소처럼 평온했다. 아버지는 애써 침통한 표정을 감추었다. 그렇게 입단속을 시켰건만. 슬픔이 잔뜩 묻어있는 목소리에 아이는 “소문을 옮기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님을 아시잖습니까.” 하고 대답하면서 말간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결정이 났다. 그렇게 아이는 마차에 올랐다.
「그래서 여길 왔다고? 나한테 잡아먹히려고?」
“제물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것을 생각합니다만.”
신께서는 다른 생각이 있으십니까? 아이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그 유순한 태도에 신, 이라고 불린 이가 혀를 찼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느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느껴지지 않을 리 없을 터.」말하는 목소리에 영력을 더욱 실었다. 아이는 그 기운을 느껴보려는 듯 눈을 감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햇살 같네요. 밝고, 따뜻하고, 다정한 힘입니다.”
예,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를 지켜주시리라는 것도요. 타키가와는 감았던 눈을 떴다. 탁해진 눈동자가 방황하지 않고 정확하게 신이 있는 곳을 찾았다.
「이렇게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받치는 인간들 따위 내 알바가 아닌데.」
“그만큼 절박하니까요.”
「하지만 너를 나에게 바친 이후에도 비가 내리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곤란한데요.”
저 말고 다른 아이들이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신께서도 바라지 않으시잖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타키가와는 손을 들어 저를 감싸고 있는 것 위에 얹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그것은 마치 동물의 털로 만든 망토처럼 느껴졌다. 타키가와는 그것이 아까 제 몸을 붙잡아준 것임을 알았고, 산 아래보다도 낮은 온도에 몸이 상하지 않도록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정말로 다정하신 분이다. 이런 다정한 분께 생명을 해하는 일을 두 번 세 번 부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타키가와는 그런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훅 불어온 바람에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단다, 얘야.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뻔하지.」
“…….”
「나는 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월을 지나왔다. 네가 다른 인간들에 비해 높은 영력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내 것으로 삼을 만큼의 것은 아니야. 그러니 나는 너를 돌려보낼 것이다.」
“하, 하지만…!”
「걱정마라. 너만 돌려보내진 않을 것이니까. 이대로 너만 보내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지. 게다가….」
네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너의 눈이 되어주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찬 바람이 불었다. 타키가와는 그 기세에 눌린 듯 눈을 감고 턱을 당겼다. 무언가 따뜻하고 말랑한 것이 눈꺼풀 위를 스친 듯 했다. 그 감촉이 멀어지자마자 바람이 다시 잠잠해져서 타키가와는 눈을 떴다.
「이제 내가 또렷하게 보이지?」
타키가와는 눈을 깜빡였다. 물방울 너머의 것을 보듯 부옇게 번진 시야가 조금씩 또렷하게 선과 색을 찾아가는 것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신과 시선을 마주했을 때, 타키가와는 제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러한 감각이 낯설어 타키가와는 제 심장 부근을 꾹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영력이 강해서 잘 느껴왔겠지만, 내가 너의 눈이 되었기 때문에 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네가 볼 수 있도록 해줄 뿐, 그 이외의 것에는 관여하지 않아. 판단은 너의 몫이다.」
“조언 정도는 구해도 되나요?”
「때에 따라 다르겠지.」
걸터 앉아있던 바위에서 가볍게 뛰어 오른 신이 아이의 앞에 내려섰다. 이제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며 신이 타키가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내밀어진 손을 붙잡았다. 「아참.」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 듯,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찰나에 신이 타키가와의 손을 살짝 흔들었다.
「계속 신이라고 부르게 둘 수는 없으니까.」
너에게는 미유키御幸, 라는 이름을 줄게. 타키가와는 조그맣게 그 이름을 말해보았다. 「크게 말해봐. 안 들려.」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키가와는 신, 미유키의 말대로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었다. “미유키 님.” 만족스러운 듯 그의 얼굴 가득 미소가 떠올랐다. 「자, 얼른 가자꾸나. 잘못했다간 흠뻑 젖을지도 모르니.」 저보다 조금 작은 타키가와의 손을 더욱 꽉 잡고 미유키가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있었던 자리 위로 똑똑, 물방울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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